최근 울산의 대표 문화유산인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보존을 위해 진행된 투명 물막이 설치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사실상 이 실험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지켜내기 쉽지 않은 것이 문화재입니다. 구미시에는 현재 온전한 보존을 위해 계측조사를 받고 있는 마애여래입상과 전면적인 보수를 거쳐 현재까지 잘 관리되고 있는 채미정이 있는데요. 문화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이 두 곳을 찾았습니다.

 


 

 

‘신라시대,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당나라 장수 한신이 백제군의 포로가 되었다.

어느 날 그의 꿈에 보살이 나타나 도망가는 길을 알려줬다.

여인의 도움으로 바위에 숨어 목숨을 구한 한신은

이후 이 여인을 부처라 생각하고

여인의 형상을 조각으로 남기게 된다.’


황상동 금강선원 내에 있는 마애여래입상. 위와 같은 전설을 가지고 있는 이 불상은 흔히 ‘칠곡인동마애불’로 불립니다. 예전 행정구역이 칠곡군 인동읍이었기 때문인데요. 거대한 자연암벽 전면에 조각돼 있는 이 마애불은 암벽 위에 별도의 판석을 얹어 불상의 머리 부분을 덮었습니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고, 머리카락은 자연 그대로 아래로 내려져 있는데요. 바위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조각해 전체적으로 풍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높이 7.3m의 거대한 이 입상은 양손을 가슴에 얹은 채로 설법하는 형상이어서 아미타여래 불상으로 추정됩니다. 소발인 머리, 호형의 눈썹, 반쯤 뜬 긴 눈, 양 볼에 올라 있는 살로 탄력성 있는 얼굴 표현 등 통일신라시대 후기 조각의 영향을 받아 10세기 이후 고려 초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마애여래입상은 보존을 위해 철골제 유리 지붕이 씌어져있는데요. 현재 이 문화재는 응력집중, 불균등한 하중작용 등의 현상으로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비파괴조사 및 구조모니터링(계측조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 마애여래입상(보물 제1122호)
위치 : 황상동 산90-14(금강선원 경내)


Tip. 마애불은,
이동이 불가능한 마애불은 확실히 그 지역의 조각 작품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조각의 유파연구나 국적연구에 가장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금동불과 같은 이동이 가능한 작품은 어떤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었다고 해도 모두 그 지역에서 조성된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데요. 입체적인 원각상보다 조각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불교미술 가운데 조각적이면서도 회화적인 특징이 있다는 데 마애불의 의의가 있습니다.


 

 

 

많은 지역민들과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구미 금오산. 이곳의 입구 왼쪽 편에 자리한 채미정은 사실 존재를 모르고 지나치는 일이 많습니다. 채미정은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정자인데요. 채미(採薇)는 고사리를 꺾는다는 뜻으로 길재의 충절을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다 아사한 은나라의 충신 백이와 숙제의 충절에 못지않다’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채미정은 1768년(영조 44년) 참의 송명흠의 건의로 선산부사 민백종이 세운 것으로 길재 선생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손꼽힙니다. 1977년 전면적인 보수를 거쳐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데요. 건물은 기둥만 16개로 된 벽체가 없는 특이한 양식의 정방형 정자로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집입니다. 들창만 들어 올리면 모두가 대청으로 된 건물로 선조들의 특이한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구조이죠. 부속 유적으로는 숙종 임금이 야은의 절의를 찬양하는 오언절구가 있습니다. 선비들은 이곳을 지날 때 말에서 내려 예를 올리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다고 전해지는데요. 금오산의 수려한 경관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는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보시기 바랍니다.
문화재 : 채미정(지방기념물 제55호)
위치 : 남통동 산 42-2(금오산 내)


참고문헌
<구미-선산 지역 문화의 복합성 구미문화재탐방> 전정중 지음, 한국학술정보
<구미·김천의 문화유적 알기> 김환대 엮음, 한국학술정보

Posted by 스마트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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